History Blog

독립운동가들의 마지막 말씀과 명언 아카이브

조국의 빛을 되찾기 위해 온몸을 바치셨던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유언과 어록을 모았습니다. 이들의 고결한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세요.

유언·순국

안중근 의사 —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본위는 묘를 하되, 하얼빈 공원 근처에 묻어두었다가..."

조국의 독립을 보기 전에는 뼈를 되찾지 말라 유언하신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현세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의사는 사형 집행 전 동생들에게 남긴 유언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당부하며,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까지 들려올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권 회복에 더욱 분투하며..."
의거·순국

윤봉길 의사 — "이 시계는 백 원짜리요. 저에게는 6원짜리 시계가 또 소용없소..."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직전, 김구 선생과 시계를 맞바꾸며 남긴 결연한 마지막 말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군의 승전 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 의사는 거거 직전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시계를 건넸습니다.

"선생님의 시계는 2원짜리이고 제 것은 6원짜리인데, 선생님 말씀대로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 시계가 제게는 더 필요 없습니다."

거거 이후 사형선고를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셨습니다. 그의 거거는 침체에 빠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체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사나이가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조국을 되찾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3·1운동

유관순 열사 —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발이 부서져도..."

서대문 형무소의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외치며 꺾이지 않았던 10대의 불꽃.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는 끊임없는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바다와 육도가 바뀔지언정 우리 대한의 독립은 영원히 잃을 수 없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감옥 안에서 만세를 부르며 악독한 고문 끝에 순국하셨습니다. 그가 남긴 말은 오늘날까지도 민족 정기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백범일지

김구 선생 — "눈발을 흩날리며 걸어갈 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와 생전에 남긴 깊은 통찰.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며 민족의 구심점 역할을 하셨습니다.

"내 소원은 첫째도 독립이오, 둘째도 독립이오, 셋째도 우리 대한의 완전한 독립이오."

문화의 힘을 강조하며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민족이 되기를 소망했던 선생의 철학은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줍니다.